민주주의의 시작은 고대 그리스 시민들의 토론문화를 통해서 출발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리스 아테네 시민들은 ‘아고라(Agora)’라는 광장에 모여서 자유롭게 토론하였고 또한 다수결을 통한 의사결정으로 민주주의를 실현하였습니다. 생각해보면 2000년 전에 일어났던 일이라고 보기에는 이해하기도 어렵고 대단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조선시대에 많은 관심을 받았던 세 번의 논쟁이 있었습니다.
이황과 기대승의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 이이와 성혼의 토론이었던 ‘인심 도심론(人心道心論)’, 그리고 여러 명이 논쟁하였던 ‘인물 성동 이론(人物性同異論)’이 대표적인 토론의 장이었습니다.
그중 첫 번째로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사단(四端)은 맹자(孟子)가 실천 도덕의 근간으로 삼았던 남의 고통을 불쌍히 여기는 측은지심(惻隱之心),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불의에 분노하는 마음인 수오지심(羞惡之心), 양보하는 마음을 뜻하는 사양지심(辭讓之心), 그리고 옳고 그름을 가리려는 마음인 시비지심(是非之心)으로 네 가지 인간의 선한 본성을 말합니다.
칠정(七情)은 《예기(禮記)》와 《중용(中庸)》에 나오는 내용으로 희(喜), 노(怒), 애(哀), 구(懼), 애(愛), 오(惡), 욕(慾)을 말합니다. 희(喜)는 기쁨, 노(怒)는 노여움, 애(哀)는 슬픔, 구(懼)는 두려움, 애(愛)는 사랑, 오(惡)는 미움, 욕(慾)은 욕망으로서 인간의 일곱 가지 감정을 뜻합니다.
조선을 대표하는 성리학자인 퇴계 이황은 사단과 칠정은 분리돼 있으며 사단은 이(理)에서 출발한 마음이고 이와 달리 칠정은 기(氣)로부터 출발한 마음이며, 인간은 이와 기를 함께 가졌지만, 두 가지가 서로 다르다고 하였습니다. 즉 인간 감정의 근원을 두 가지로 본거죠. 선과 악이 섞이지 않은 마음의 작용인 4단은 이(理)의 발동에 속하는 것으로, 이것은 인성(人性)에 있어 본연의 성(性)과 기질(氣質)의 성(性)이 다른 것과 같다고 하여 이른바 주리론적(主理論的) 이기 이원론(理氣二元論)을 주장하였습니다.
당시 성리학의 대가로서 성균관 대사성이었던 퇴계 이황의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이름 없는 무명 학자였으며 독학으로 성리학을 깨우친 고봉 기대승은 이에 크게 반발하며 질문을 했습니다. 기대성은 ‘사단과 칠정은 하나로서 인간 감정이 일어나는 길은 한 가지로서 분리될 수 없다.’ 주장하였습니다. 두 명의 위치를 지금으로 비교해보면 대학 신입생과 대학총장으로 볼 수 있으니 당시 유교적이었던 조선시대에서 두 명의 논쟁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네요. 당시 퇴계 이황은 영남의 예안(현재 안동)에 살고 있었고 기대승은 호남의 광산(현재 광주)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서신을 통해서 벌어진 논쟁으로 전국의 학자들의 관심을 받았다고 합니다. 퇴계 이황은 풋내기 학자의 도발을 무시할 수도 있었지만 기대승의 이론이 타당하다 생각하여 답신을 보내기 시작했고 서신으로 무려 8년 동안 120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논쟁을 펼쳤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성리학의 대학자였던 퇴계 이황의 면모를 느낄 수 있는 대목입니다.
사단 칠정 논쟁은 퇴계 이황과 기대승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퇴계 이황이 죽은 후 율곡과 성혼으로 이어졌고 당시 조선사회의 성리학자들 사이에 관심을 불러일으켜 전국적인 최대의 논쟁이 되었고 이후로 퇴계 이황의 이론을 지지하는 영남학파와 율곡의 이론을 지지하는 기호학파로 발전하면서 중국 성리학을 넘어서 조선의 성리학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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